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월트디즈니컴포니코리아
디즈니의 역사에서 '백설공주'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디즈니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는 작품성과 기술력, 상업성을 고루 갖춰 디즈니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디즈니의 첫 번째 프린세스인 '백설공주'는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 역사에서 봐도 90년 가까이 가장 오래되고 견고한 팬층을 지닌 캐릭터다.
그런 '백설공주'가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으로 거듭났다. 디즈니 프린세스가 등장한 실사 영화 '말레피센트'(2014), '신데렐라'(2015),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 '뮬란'(2020), '인어공주'(2023)가 '백설공주'보다 먼저 나온 걸 봐도 디즈니를 대표하는 '백설공주' 실사화에 대한 디즈니의 고심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88년 만에 실사 영화로 돌아온 '백설공주'는 원작 애니메이션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동화책을 펼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동화책 그림과 함께 백설공주의 어린 시절을 보여 준다. 초반 전개는 빠른 편이다. 왕과 왕비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딸에서 사악한 새엄마 왕비 때문에 겪는 시련, 마법의 숲으로 도망친 백설 공주가 일곱 난쟁이를 만나기까지 과정이 신나고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와 함께 착착 전개된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백설 공주가 마법의 숲속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그곳에서 동물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은 원작 오마주에 가깝다. 동물 친구들의 안내로 일곱 난쟁이의 집에 머무르는 장면과 일곱 난쟁이가 '하이-호(Heigh-Ho)'를 부르며 귀가하는 장면까지 원작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실사 영화 '백설공주'가 원작과 똑같은 내용으로만 진행된다는 건가? 그럴 리가. 초반에 백설공주의 뜻과 왕자를 대신하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등 주요 디테일을 바꿨음을 알려준 영화는 중반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꾸린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백설공주 이야기가 된 건 아니다. 실사 영화 '백설공주'가 취한 전략은 고전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따르면서 시대에 맞지 않은 캐릭터와 메시지를 수정한 방식이다. 볼거리는 원작에 가깝고 사악한 왕비에 맞서는 백설공주의 말과 행동에 힘을 실었다. '백설'의 뜻은 눈처럼 하얀 피부색이 아니라 눈보라를 뚫고 태어난 강인함으로 재정의하고, 백설공주는 아버지인 왕에게 받은 가르침대로 담대함, 용기, 공정, 진실을 추구한다. '일곱 난쟁이 중에서도 약자에 속하는 멍청이(Dopey)와 백설공주의 관계성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문제는 원작과 리메이크의 균형을 잡으려는 실사 영화 '백설공주'의 전략이 어긋난다는 점이다. 주연 배우 캐스팅의 문제가 아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드레스를 재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말을 타는 공주, 신분 차이만 있을 뿐 왕자 역할이나 다름없는 남자 주인공(조나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일곱 난쟁이 캐릭터, 다인종(주로 흑인, 아시안)으로 꾸려진 백성들을 보면 다양성 추구보단 착잡한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구색 맞추기 각색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야 할 감흥을 빼앗는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새로운 백설 공주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백설공주'를 리메이크한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번 '백설공주'의 새로운 시도는 원작에 발목 잡혀 옴짝달싹 못 하는 꼴이다. .2012년에 타셈 싱 감독과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디즈니 IP에서 자유로운 만큼 (완성도와는 별개로)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백설공주'(2012)는 타셈 싱 감독 특유의 화려한 미학에 바지 입은 백설공주, 발리우드 댄스까지 접목한 코미디였고, 왕비의 명령으로 백설공주를 죽이려던 헌츠맨 캐릭터를 내세운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은 잔다르크에 가까운 전사 백설공주를 보여주었다.
앞서 두 작품과 비교하자면 '백설공주'의 원작과 다른 전개나 일부 설정 변경은 소박해 보일 정도다. 디즈니 영화의 주요 관객층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영화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연대할 때 부조리한 권력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확실한 전달 방식이지만 성인 관객에겐 설교처럼 들리고 결말 또한 허무하게 와 닿는다. 그나마 백설공주와 조나단의 러브 신에서 로맨스 흥행작 '500일의 썸머'(2010), 블록버스터 시리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의 장기를 찾아볼 수 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포니코리아
새로운 '백설공주'의 성취라면 판타지 뮤지컬에 걸맞은 음악들이다. '라라랜드' '알라딘' '위대한 쇼맨'의 음악을 맡은 벤지 파섹(작사)과 저스틴 폴(작곡) 콤비가 유명한 원작 OST에 도전하는 뮤지컬 넘버들을 완성했다. 레이첼 지글러가 부르는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백설공주 캐스팅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여왕 역을 맡은 갤 가돗은 '백설공주' 리메이크 영화의 여왕 캐릭터와 배역을 맡은 배우들(줄리아 로버츠, 샤를리즈 테론)과 비교하면 원작 애니메이션 여왕에 가장 가깝다. 갤 가돗이 고전적인 악녀 의상과 분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디즈니 라이브 액션 작품은 '알라딘' 1,255만 명, '미녀와 야수' 513만 명, '라이온 킹' 470만 명, '정글북' 253만 명이다. '위키드'(2024)처럼 완성도에 기대를 걸어보면 모를까, 얼어붙은 극장가에 배우들과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백설공주'의 흥행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배우가 발언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영화 홍보와 관람 여부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가 연기만 잘한다고 통하는 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