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4천억원 들여 핵운용 공군기지 현대화·차세대 전투기 추가
러 위협·미국 친러행보에…마크롱 "전쟁 막으려면 스스로 준비"
공군 기지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뤽세유 생소베르 EPA=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공군기지를 방문해 공군력 강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2025.03.18.
(파리·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현윤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유럽을 배제하고 적대국인 러시아와 밀착하는 등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무시하자 '유럽 자체 핵우산론'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가 핵무기 강화 계획을 공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동부의 뤽세유 생소베르 공군기지를 방문해 이곳을 프랑스의 핵 억지 프로그램의 주축 역할을 할 최첨단 기지로 변모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라주 2000-5 전투기 26대를 보유한 이 공군 기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공중 방어에서 핵심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런 구상의 일환으로 약 15억 유로(약 2조4천억원)를 들여 기지를 현대화하고, 2035년까지 차세대 라팔 전투기 40대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라팔 전투기는 프랑스 다쏘사가 개발한 다목적 전투기로, 핵미사일 운용이 가능해 프랑스 핵 억지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배치될 차세대 라팔 전투기에는 기존보다 2배 증가한 사거리 600마일(약 960㎞)에 달하는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신형 초음속 미사일이 탑재된다.
프랑스 북동부 뤽세유 생소베르 공군 기지의 라팔 전투기 [EPA=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기지의 장병들에게 "우리나라와 우리 대륙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무장하고 준비해야 한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해당 기지의 현대화 작업에 맞춰 2천명의 군인과 민간인도 추가 배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의 핵무기 강화 계획 공개는 취임하자마자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미국 도움 없이도 스스로 방어할 힘을 키워야 한다는 자강론이 유럽에서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는 것과 맞물려 이뤄졌다.
유럽은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틀 안에서 사실상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나토 동맹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유럽에서 핵을 보유한 두 나라인 프랑스, 영국과 핵을 공유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찌감치 유럽을 위한 '프랑스 핵우산론'을 주장해온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5일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이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 이런 논의에 앞장서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서양 균열 조짐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부터 나토가 '뇌사'(brain death)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인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도 최근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며 "유럽의 두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해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에 공감을 표현한 바 있다.
메르츠 대표는 이날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이미 1960년대에 독일을 위해 이런 제안을 했다"며 "금기 없이 이 논의를 하는 것은 독일의 이익에도 그 어느 때보다 부합한다"고 말했다.
WSJ은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프랑스 주도의 '핵 우산론'에 현재까지 독일 이외에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가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한편, 프랑스가 보유한 핵 탄두는 약 290기로 추정되며, 이는 수천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미국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것이라고 WSJ은 짚었다.
또한 프랑스에는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방문한 공군 기지 이외에 핵무기를 운용할 수 있는 공군 기지 3곳이 더 있으며, 프랑스가 갖고 있는 핵탄두는 라팔 전투기뿐 아니라 잠수함에서도 발사 가능하다고 WSJ은 소개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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