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 대상 '삼성다움 복원' 세미나서 이 회장 메시지 공유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 새긴 기념패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 임원들을 대상으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고 질책하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2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번에 '사즉생'까지 언급한 것은 그만큼 현재 삼성이 처한 복합 위기 상황이 기업의 생존이 달릴 정도로 심각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천여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 철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해당 영상은 연초 전체 사장단 세미나에서 공개한 신년메시지 영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이재용 회장의 기존 발언들과 함께 올해 초 신년 메시지로 내놓으려고 준비했던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영상에 이 회장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영상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는데 이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가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며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과 인재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이 회장은 그간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해왔다.
이번 영상에서도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 와야 한다"며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우리의 오랜 원칙이다.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발언이 소개됐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상에서는 사업별 문제점 등에 대한 진단도 공개됐다.
한 참석자는 "메모리 반도체가 자만해 AI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반도체 사업이 대규모 투자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가전 제품의 품질 경쟁력도 저조하다는 등의 내용이 공유됐다"고 전했다.
세미나에선 영상에 이어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삼성의 위기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는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게 아니냐" "상대적인 등수에 집착하다 보니 질적 향상을 못 이루고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지적도 잇따랐다.
참석자들은 내부 리더십 교육 등에 이어 세부 주제에 관해 토론하며 위기 대처와 리더십 강화 방안 등을 모색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는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가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여기(크리스털 패)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상 이번 세미나의 핵심"이라며 "'삼성다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독한 삼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그동안 삼성이 너무 자만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더 독해져야 한다는 취지가 전달됐다"며 "그만큼 현재의 삼성이 절박하다는 위기의식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 범용(레거시) 메모리의 부진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지연 등으로 지난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전망도 밝지는 않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2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21곳의 실적 컨센서스(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5조1천1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5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실적 눈높이는 최근 들어 5조원대 밑으로 낮아지는 분위기다.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TV 시장 점유율이 2023년 30.1%에서 지난해 28.3%로 하락한 것을 비롯해 스마트폰(19.7%→18.3%), D램(42.2%→41.5%) 등 주요 제품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다만 미래 준비를 위한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는 지난해 각각 35조원과 53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룹 전반의 복합 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해 말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에 신설한 경영진단실은 지난 1월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신사업팀으로 격상시키며 미래 먹거리 발굴과 대형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 상태다.
차에서 내리는 이재용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할 강화를 목표로 경기 용인에 위치한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 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삼성은 앞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임원 대상 특별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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