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2025.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과거에도 종종 '위기'를 언급하며 내부에 긴장감을 불어넣곤 했지만 '사즉생'(死卽生), '독한 삼성인'과 같은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반도체 등 주력 사업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과 강한 극복 의지가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오는 19일 주주총회에서 재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것인지 여부에 주목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등을 언급하며 기술·인재를 바탕으로 한 '위기 극복'을 강조했다. 2020년 5월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 위기론이 불거진 후 이 회장 발언의 톤은 한층 강해졌다. 그는 작년 11월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지 않다"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했다.
최근 이 회장이 9년 만에 재개한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한 것은 최고 수준의 위기의식과 자기반성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세미나 참석 임원에게 전달한 크리스털 패에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긴 것은 그동안 '독하지 못했다'는 강한 질책으로도 읽힌다.
위기의식의 진원지는 반도체다. 삼성그룹 63개 계열사(2024년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기준) 중 핵심은 삼성전자이고, 삼성전자 사업 중에서도 핵심은 반도체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그룹 전반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양대 축인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이 모두 어려움을 겪으며 그룹 내 위기의식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글로벌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시대 도래로 수요가 급증한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다. 레거시(범용) 시장에선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으며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D램익스체인지 기준)은 2022년 43.1%, 2023년 42.2%, 지난해 41.5%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문제는 비단 HBM 부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어느 순간부터 메모리 제품 전반에서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2024.10.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낮은 수율 등 문제로 적자가 누적됐고,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와 점유율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7.1%로 삼성전자(8.1%)와 격차가 59%포인트(p)에 달했다. 지난해 3분기(55.6%p) 대비 점유율 격차가 확대됐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D램뿐 아니라 TV, 스마트폰 등 주요 제품 점유율이 하락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점유율 23%를 기록하며 선두를 달렸고 삼성전자는 16%로 2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9월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16' 출시가 영향을 미쳤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도 삼성전자 위기를 부채질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부문 '관세'와 '보조금 중단'을 거론하며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투자 계획(현재 370억달러)을 무리하게 확대할 경우 사업성이 더 악화할 수 있다.
업계는 19일 열리는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주목한다. 이 회장이 메시지를 낸 직후 열리는 자리인 만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DS부문장),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 등 주요 경영진이 직접 위기 극복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총 때 처음 도입한 '주주와의 대화'를 올해도 운영해 주요 경영진이 주주의 질문에 직접 답할 예정이다.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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