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생태계 곳곳에 악영향
미세플라스틱과 대장균 배양하자… 5∼10일 이내 항생제 저항성 증가
내성균 촉진하는 ‘핫스폿’ 역할… 미세입자가 햇빛 막아 광합성 감소
연 1억7000만 t가량 농작물 손실… “표본 늘려 중장기적 영향 밝혀야”
미세플라스틱이 특정 대장균의 항생제 내성을 촉진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름 5mm 이하로 아주 작은 크기인 미세플라스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생수병 등 다양한 식품 포장재에서 방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은 뇌, 심장, 태반, 음경 등 인체 곳곳에 축적되지만 중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그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16일 과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은 항생제 투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세균의 항균제 내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관 질환, 심혈관계 문제, 심지어 식량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항균제 내성 유발,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무함마드 자만 미국 보스턴대(BU) 교수 연구팀이 1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응용 및 환경 미생물학’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콜라이(E.coli)’ 란 이름의 특정 대장균을 다양한 미세플라스틱과 함께 배양한 결과 항생제가 없는 환경에서도 세균의 내성이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미세플라스틱은 단순한 오염 물질이 아니다”라며 “세균의 항생제 내성을 촉진하는 복잡한 매개체로 공중보건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폴리스티렌,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든 1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0.05mm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을 사용했다. 10일 동안 밀폐된 환경에서 대장균과 함께 배양하면서 2일마다 암피실린, 시프로플록사신, 독시사이클린, 스트렙토마이신 등 네 가지 항생제를 투여하고 내성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과 함께 배양된 대장균은 5∼10일 이내에 모든 항생제에 대해 내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이 제거된 후에도 항생제 내성이 상당히 강하게 유지됐다. 연구팀은 “기존의 항생제 내성 연구는 주로 항생제 남용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 연구는 미세플라스틱 자체가 내성균 발생을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세플라스틱이 단순히 항생제 내성균의 운반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생제 내성이 진화하는 ‘핫스폿’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세플라스틱 오염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세플라스틱이 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4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린 이탈리아 캄파니아의대 연구팀 연구에 따르면 혈관에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이 최대 4배 높고 사망률도 증가했다. 1월 중국 환경과학연구원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이 혈류를 방해하고 혈전(피떡) 형성을 촉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뇌혈관을 따라 이동하는 미세플라스틱이 혈액 순환을 방해해 인지 기능과 운동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 식량 생산에도 악영향… “분석기법 도입해야”
미세플라스틱은 생태계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 난징대 연구팀은 10일(현지 시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지구 생태계의 광합성을 감소시켜 농작물과 수산물 생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미세플라스틱이 방출하는 미세한 입자는 식물의 잎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을 줄인다. 미세플라스틱의 독소는 식물 안에서 영양분과 수분 전달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광합성을 일으키는 엽록소의 생성 효율을 떨어뜨린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 그간 미세플라스틱이 유발한 육상 식물의 광합성 감소가 전체 광합성 감소 중 12%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해조류 광합성의 7%에도 미세플라스틱이 관여했다고 봤다.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광합성 감소에 따라 아시아에선 연간 5400만 t에서 1억7700만 t에 이르는 농작물이 손실된다고 분석했다.
수산물 생산량도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이 해조류와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방해하면서 먹이사슬이 붕괴하고 해양 생태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야기한 어류와 해산물 손실이 연간 100만 t에서 2400만 t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많은 표본을 조사하고 앞으로 분석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간 이뤄진 대부분의 연구는 20∼50개의 적은 표본만을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존 미세플라스틱 분석에 사용되는 열분해 가스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Py-GCMS) 기법은 생체 조직과 미세플라스틱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전자현미경과 X선 분광법(EDS) 또한 미세플라스틱과 기타 유기물질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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