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난방료 내리거나 원가 공개해라"
지역난방 업체에 '요금 최대 5% 인하' 압박
난방公보다 비싸면 원가 공개…7월 1일 시행
33곳 "만성적자 내모는 주먹구구 개편" 반발
정부가 전국 33개 지역난방 업체를 대상으로 “아파트 입주민 등에게 부과하는 난방료를 한국지역난방공사보다 최대 5% 낮게 책정하라”고 통보했다. 대다수 민간업체의 요금이 한국지역난방공사와 비슷한 만큼 최대 5% 인하를 요구한 셈이다. 정부는 또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요율이 같거나 높게 책정한 사업자에게 영업 기밀인 원가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지역난방 업체들은 “원가 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 노력을 원천적으로 막는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1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 지역난방 업체를 대상으로 연 ‘열요금(지역난방료) 제도 개편안’ 간담회에서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요금의 100~110% 범위에서 책정할 수 있는 민간 지역난방 업체의 난방요금 관련 규정(집단에너지사업법 17조 관련 시행규칙)을 오는 7월 1일부터 98~110%로 변경한 뒤 단계적으로 95~110%로 떨어뜨리기로 했다. 산업부는 난방요금을 한국지역난방공사와 같거나 높게 책정한 민간기업에 원가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원가 자료에는 폐열회수 단가, 주요 설비 개발·설치비 등 핵심 영업 기밀이 담겨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업체의 수익성이 일시적으로 좋아졌다는 이유로 요금 인하를 강제하면 중장기 투자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가격 통제에 나서면 기업이 원가 절감에 나설 이유가 없어지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난방료가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 개 업체가 특정 지역의 난방을 책임지는 사업 특성상 독점 성격이 있는 만큼 가격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들과 협의 중인 만큼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민간 지역난방, 원가 아끼려고 적자 감수하며 설비투자 확대
효율성 높여 흑자 전환했지만 정부 태클…"공급가격 낮춰라"
지난 14일 찾은 인천 남동공단의 한 제강기업 내부는 철근을 제조할 때 쓰는 가열로의 열기로 후끈했다. 이 가열로는 이 일대 지역난방을 맡고 있는 A사에는 ‘보물’ 같은 존재다. 여기에서 나오는 폐열로 물을 데워 인근 6만 가구에 공급하기 때문이다. 폐열 난방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상당 기간 적자를 본 A사는 시스템이 궤도에 오르자 흑자기업이 됐다.
A사를 비롯한 민간 지역난방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오는 7월 1일부터 지역난방 요금제도를 개편하기로 해서다. 민간기업은 ‘요금을 낮추거나, 원가를 공개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요금을 인하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원가를 공개하면 기밀이 유출된다. 민간업체들이 한목소리로 “반시장적 정책” “업계를 고사시킬 것”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지역난방은 열병합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로 물을 데워 가정에 공급하는 난방 방식이다. 부족한 열은 액화천연가스(LNG)를 태워 채운다.
민간사업자 난방료의 기준은 국내 지역난방 시장의 50%(약 180만 가구)를 차지한 한국지역난방공사 요금이다. 민간기업은 지역난방공사가 정한 기준요금의 100~110%만큼을 부과할 수 있다. 지역난방공사는 ‘규모의 경제’ 덕분에 원가 경쟁력이 높은 데다 인프라도 잘 갖춘 만큼 민간 사업자에 최대 10% 높게 요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난방공사보다 10%를 더 받아도 사업 초기엔 수년간 적자를 낸다”며 “신도시가 들어서도 모든 가구가 입주할 때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난방료가 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10여 년간 매년 10개가 넘는 업체가 각각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민간기업을 몰아붙이는 건 최근 몇 년간 전반적인 경영 상황이 지역난방공사보다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역난방공사는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LNG 가격이 급등한 탓에 2022년 4040억원 영업적자를 내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했다. 이를 메워주기 위해 최근 2년간 요금을 올려 받고 있다. 반면 공장 폐열 등을 열원으로 쓰는 상당수 민간업체는 효율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전쟁 종료로 LNG 가격이 떨어지고 지역난방공사의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요금 인하 여력이 생길 것”이라며 “이런 지역난방공사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원가 절감 노력 사라질 것”
기업들은 정부의 원가 공개 요구에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공장에서 폐열을 회수하고 해외에서 LNG를 싸게 도입하는 식으로 수익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며 “원가 공개가 의무화되면 굳이 원가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했다.
정부 개편안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민간기업이 집단에너지사업법 17조에 근거해 지역난방공사 요금의 100~110% 범위에서 정부에 ‘신고’만 하면 되는데, 정부안은 사실상 ‘인가제’로 바꾸겠다는 의미여서다. 이광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정부가 기업 원가를 들여다본 뒤 사실상 요금을 책정해주겠다는 건 신고제라는 현행법 취지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난방은 사실상 독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격 통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번 사업자로 선정돼 인프라를 구축하면 중간에 교체할 수 없고, 민간기업이 책정한 요금을 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요금 인하를 통해 최근 수년간 늘어난 지역난방기업의 수익을 소비자에게 이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역난방
공장 폐열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태워 만든 열 에너지를 가정에 공급하는 난방 방식.
도시가스보다 효율이 높아 2000년 이후 신도시들은 대부분 지역난방을 채택하고 있다
김진원/김형규/성상훈 기자 jin1@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