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6일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공군 KF-16 전투기에서 비정상적으로 투하된 폭탄이 경기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민가 지역에 떨어져 폭발하고 있다. MBN 제공
지난 6일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실사격 훈련에 참여했던 우리 공군 KF-16 전투기 2대가 좌표를 잘못 입력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표적보다 남서쪽으로 10㎞가량 떨어진 포천 이동면 민가지역에 MK-82 폭탄 8발이 폭격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참으로 아찔한 사고입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군이 오히려 국민에게 위해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로 군인 12명을 포함해 31명이 부상을 입었고, 민가 142가구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심지어 조종사가 잘못 입력한 좌표의 위치는 군인아파트 인근이라, 좌표 고도를 수정하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공군과 국방부 조사본부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두 명의 조종사가 '기본 중의 기본'마저도 지키지 않은 것이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올바르게 좌표를 입력했는지 재확인하는 과정은 조종사에겐 '식사 후 양치하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공군은 역대 실무장 훈련 중 표적을 맞히지 못한 경우, 좌표 오입력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사고 당일처럼 날씨가 화창한 날엔 조종사가 계기판보다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표적을 믿고 사격을 실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조종사는 잘못 입력된 좌표 때문에 표적과의 거리가 늘어나자 탄착 시간을 맞추는 데 급급해 정확한 표적을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계기판만 보고 최종공격통제관(JTAC)에게 '표적 확인'을 통보한 뒤 그대로 폭탄을 투하해 버렸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13일 조종사 두 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형사 입건했습니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포천 전투기 오폭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조종사들의 문제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나아가 공군은 조종사뿐만 아니라 지휘관, 훈련 통제, 사고 후 보고 및 공지 과정에서 드러난 조직 전반의 '책임감 부재'를 타파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10일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직접 기자들과 만나 100분간 중간 조사결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에 임했습니다. 역대 군 관련 사건·사고 중 참모총장이 직접 브리퍼로 나서 질문에 답한 전례는 없다고 합니다. 조종사 출신인 이 총장이 이 사고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겠죠. 어찌 보면 당연한 대응입니다.
특히 이 총장이 중간 조사결과 발표 날 공군 내부 구성원에게 보낸 지휘서신에서 강력한 조직 쇄신을 촉구한 표현들은 그 어느 지휘관의 메시지보다 날카로웠습니다. 이 총장은 "이번 사고를 되짚어보면 총체적 난국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모든 과정이 최악이었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공군 전반에 걸친 심각한 안전의식 결핍과 조직문화 결함을 보여준 비극"이라며 "화려한 조명에 가려진 공군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고도 했습니다. 임무 조종사들은 해이했고, 중간감독자는 잘못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상급 지휘관들은 적극적으로 상황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고 질타하며 "관행, 절차, 교육, 훈련, 관계, 문화에 이르기까지 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총망라해 문제를 되짚어 보자"고 당부했습니다.
공군의 각오가 상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비록 12·3 불법 계엄의 태풍에선 한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상 초유의 오폭 사고 발생 원인이 군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직무 유기'와 '기강 해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거니와, 공군은 연이은 사건·사고로 개혁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고 이예람 중사가 성추행에 이어 2차 피해까지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재발 방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 하사, 지난해 소위 등 초급 여군 간부에 대한 지휘관들의 성비위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계급으로 찍어 누르고, 후배를 수족처럼 여기는 군 문화가 지배하는 이상 독버섯은 계속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20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날에 고인의 사진 앞 국화꽃이 놓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선이 필요한 군대 문화는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돌이켜보면 최소한 두 가지 문화 혁신이 필요해 보입니다. 먼저 지위의 상하를 떠나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으로 좌표를 제대로 입력한 2번기조차 왜 1번기의 이상 징후를 바로잡지 못했는지를 꼽았습니다. 엄 사무총장은 "함께 임무에 투입된 조종사들은 동등한 관계로 서로 교신하고 소통해야 하지만, 공중에서조차 선배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고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군에 따르면, 진입 대기 지점부터 오입력된 폭격 지점까지의 거리는 약 23.5㎞, 전투기들의 이동 소요 시간은 1분 30초가량이었습니다. 두 조종사 간에 의사소통을 통해, 임무를 완수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오폭을 막을 수 있었던 시간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임무 완수, 즉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왜 1번기 조종사는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음에도 허위로 '표적 확인'을 통보하고 실사격까지 강행했을까요? 많은 전현직 군인들은 그날 훈련에 김명수 합참의장과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 등 최고위급 지휘관들이 현장지도를 나온 아주 중요한 훈련이었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공군은 평소 훈련 중 상황 판단에 따라 '임무 중지'를 하더라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날도 그랬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실패는 용인하되,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뼈에 새기려는 문화가 있었다면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한 예비역 대령은 "군은 절차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즉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존재 이유인 조직"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게 되면 '전투 의지가 없는 군인'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죠. 2023년 무리한 구조작업 지시 탓에 발생한 '채 상병 사건'도 이런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뿌리 깊은 조직 특성 탓에 하급자의 의견 개진이 어려운 군 문화는 12·3 불법계엄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오폭 사고는 비단 공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군 전체의 '군 문화 혁신'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2024년 5월 14일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경산=연합뉴스
문화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규정을 다듬고 관리·감독에 공을 들이며, 구성원들이 수긍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비로소 작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총장은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사고로 부상을 입고 수도병원에 입원해 계신 분께서 '조종사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니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그 말씀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절차와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의 진심이 결실을 맺기 위해선 절차를 보완하고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모두가 결과만큼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가 실패에서 질책이 아닌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조직이라는 믿음. 이번 사고가 우리 군에 그 믿음을 세우는 초석이 될 때, 그 피해자분의 진심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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