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와 공명하는 엔터테이닝 영화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의식에 정치 드라마 장르를 결합한 《콘클라베》가 최고의 엔터테이닝 무비라는 사실은, 영화를 접하기 전에는 도무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지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총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각색상 부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앞서 열렸던 제7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비롯해 네 개 부문의 트로피를 챙긴 바 있다.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원작 소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2)의 각본을 담당한 피터 스트라우겐의 손을 거치며 한층 더 짙은 첩보 스릴러의 기운을 획득했다. 통신기기 사용과 외부인 출입금지, 도청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금한 추기경들의 공간은 밀실에 다름 아니다.
영화 《콘클라베》 포스터 ⓒ(주)디스테이션
이게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 전쟁인가
'콘클라베(conlave)'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뜻한다. 교황이 세상을 떠나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를 가진다. 인원 중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다음 교황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이어지는 회의. 외부에서는 하루 두 번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통해 투표 결과를 가늠할 수 있다. 결정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 연기가, 새 교황이 선출됐을 때는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진행하는 이 투표의 어원은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즉 열쇠로 문을 걸어잠근 방을 의미한다.
열일곱 살 소년병을 따라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꼼짝없이 관객을 불러다 앉혔던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의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에게 이 영화는 배경을 바꾼 또 하나의 '전쟁 영화'였음이 분명하다. 피비린내 물씬한 전장은 바티칸 내부에서 굳게 문을 걸어잠근 비밀스러운 투표장과 추기경단이 머무르는 임시숙소(Casa Santa Marta)로 탈바꿈한다. 총성과 비명 대신 은밀한 논의와 의심, 시선의 분주한 엇갈림이 존재하는 복도와 각자의 믿음의 시험대가 되는 투표지가 그곳에 있다.
갑작스러운 교황 서거 후 추기경들에게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교황의 공석이 가져올 혼란을 신속하게 수습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108명의 추기경이 모여든다. 콘클라베를 이끄는 추기경 단장 토마스(랄프 파인즈)는 생전 각별했던 교황의 뜻에 따라 단장직 사임을 잠시 미루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힘쓴다. 그가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벨리니(스탠리 투치)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가톨릭 교회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보 성향의 후보다. 반대편에 선 전통 보수주의자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막상 투표가 시작되자 나이지리아 출신 추기경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가 초반 우세를 보인다. 최초의 흑인 교황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찰나, 그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선거판을 뒤흔드는 변수가 된다. '인 펙토레' 추기경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의 등장 역시 잔잔한 파문이다. '인 펙토레(in péctore)'는 가톨릭 교회를 향한 박해가 계속되는 지역에 교황만이 정체를 알고 있는 추기경을 임명하는 데서 유래한 '익명의 추기경'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추기경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는 그의 등장으로 추기경단에는 동요가 인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들여다보는 가톨릭계 내부는 신앙의 신실함보다는 인간 본성의 면면이 얽히고설켜 더 크게 두드러지는 배경이다. 정치와 권력과 신앙,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집단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결과, 신성한 공간이 세속적 욕망이 들끓는 용광로로 뒤바뀐 풍경, 전통과 진보 사이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조용하고도 강력한 폭발은 가히 전쟁에 비견될 만하다. "이건 전쟁이 아니다"라는 토마스의 말에 벨리니는 강한 어조로 반박한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단장님도 한쪽 편에 서셔야 하고요."
후보들의 면면을 은밀히 추적하고 그들이 감추었던 비밀에 하나씩 다가서는 토마스는 추리물에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야 하는 탐정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이때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지만 사건 브리핑은 불가능한 탐정이라는 제약, 즉 고해성사의 내용을 발설할 수 없는 사제의 위치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극적인 딜레마다.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에서 의혹은 얼마나 정확하게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인가. 투표 결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정의를 위해 금기를 깰 것인가.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확신은 멀리, 의심은 가까이
이 과정에서 영화는 그간 가톨릭 교회가 직면했던 현대의 문제들을 각 인물들과 엮어 꼬집기도 한다. 동성애와 이혼 등을 대하는 종교의 자세, 성추문을 비롯한 교회의 각종 비리를 언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중 전체 출연시간은 8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주는 수녀 이사벨라(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종교 내 뿌리 깊은 남성 중심 질서의 한계를 명백히 꼬집는 캐릭터다. 동시에 토마스의 입장에서 보면 《콘클라베》는 자기 의심과 여러 위기 사이의 여정을 헤쳐 나가는 서사이고, 주지하듯 이는 비단 특정 종교적 상황에만 해당하는 과정은 아니다. 현존하는 가장 비밀스러운 종교적 절차에서 시작한 이야기지만 《콘클라베》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이유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마지막에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실천하는 교황을 주시기를." 소리 없는 완력 다툼을 벌이는 이들 사이에서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치운 채, 확신을 멀리하고 의심을 가까이에 둘 것을 이야기하는 토마스의 연설이 현실정치의 그것과 정확히 공명한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인 영화다. 애초에 신앙과 정치는 한 끗 차이일지 모른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은 이 영화를 '편집증과 폐소공포증의 다른 버전'이라고 설명한다. 바티칸의 건물 양식과 사제들의 붉은 옷자락을 포착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배가하는 사이, 때론 그 공간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보이기도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어둡게 차단된 공간이 다시 세상의 빛을 받아들일 때, 영화는 일종의 안도감마저 선사한다. 일련의 과정 끝에 새로 선출된 교황이 스스로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라 불리기로 결정하는 것은 《콘클라베》의 가장 상징적인 선택이다. 어원은 '무결하다'. 누가 그의 존재에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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