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한 NFL 슈퍼스타 카일러 머리 인터뷰
한국인 외할머니 둔 미국인
헬멧에 태극기 붙이고 활약
외모 때문에 따돌림 당했지만
내 뿌리·정체성 숨긴 적 없어
한옥마을·DDP 등 명소 찾아
손흥민·정찬성·이정후 등 존경
손흥민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었다고 밝힌 NFL 슈퍼스타 카일러 머리가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다. 김호영 기자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쿼터백 카일러 머리(27)는 미국프로풋볼(NFL)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슈퍼스타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그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할 때가 왔다. 헬멧에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를 붙이고 한국계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그가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플래그 풋볼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머리는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나라고 생각한다. 태극기를 보면 없던 힘도 절로 생기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국 국가대표로 활약해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머리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18년이다. 그가 역대 최초로 NFL과 미국프로야구(MLB)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을 받으며 한국팬들에게도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외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머리를 응원하는 팬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머리는 지난 10일 인천공항에 모인 수많은 팬들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에서는 NFL의 인기가 높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머리는 “한국계라는 이유로 환영해준 한국팬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길 잘한 것 같다. 하늘에서 보고 계시는 외할머니도 손자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남산골 한옥마을 등에 방문한 머리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어 옷을 고르는 데만 매일 1시간 넘게 걸렸다. 12일에는 손흥민에 대한 존경과 응원의 의미를 담아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었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한국만의 감성이 느껴져 만족스럽다”고 미소를 지었다.
쿼터 코리안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데에는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방한에도 함께한 어머니 미시 씨는 결혼 전까지 ‘미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했다. 미국 통신 업체 버라이즌 전략 담당 부사장으로 활약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머리는 “어린 시절에는 코가 낮고 눈이 가늘어 차별과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내 뿌리와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밝혔다”며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내가 더욱 특별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었다고 밝힌 NFL 슈퍼스타 카일러 머리가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찾게 돼 행복하다고 밝힌 머리는 자신을 효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부모님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다.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온 만큼 자신 있게 효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머리는 태극마크를 달고 2028 LA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손흥민과 정찬성, 이정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서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만큼 특별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스포츠 선수들이 정말 많은데 앞으로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응원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애리조나와 5년간 총액 2억3050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던 머리는 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우승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인생 가장 큰 목표가 슈퍼볼 우승이다. 여기에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팀에서 가장 중요한 쿼터백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준비를 잘해 앞으로는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머리는 190㎝가 넘는 선수들이 즐비한 NFL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찾기 어려운 단신 쿼터백이다. 키가 178㎝밖에 되지 않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비결로는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을 꼽았다.
그는 “남들에게 없는 나만의 무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강력한 어깨와 민첩성, 순간적 판단”이라며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상 이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수많은 반복 훈련을 통해 이제는 본능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전진한다는 의미가 담긴 초록불이라는 한국어를 적어놨다.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만큼 지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한국 명언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머리는 인생의 암흑기였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있었던 시련을 극복한 뒤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고 소개했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리는 큰 기대를 받고 들어간 텍사스A&M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오클라호마대로 전학을 갔지만 처음 1년은 규정으로 인해 벤치에서 대기했고 그다음 해에도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 최고의 위기가 대변혁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3년간 기본기를 다시 다듬고 매일 10시간 넘게 훈련에 매진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머리는 “세계 최고의 쿼터백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자 로딩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슬럼프로 힘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어려움이 찾아오겠지만 도망가지 않고 담담하게 이겨내겠다”고 강조했다.
오는 20일까지 한국에 머무는 머리는 TV 예능 ‘런닝맨’ 출연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 정말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14일에는 세브란스병원에 방문해 희소 질환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주 가장 기대되는 일정은 제주도 방문인데 가족들과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었다고 밝힌 NFL 슈퍼스타 카일러 머리가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다. 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