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재거 "페이스풀, 오랫동안 제 삶의 일부" 애도
[런던=AP/뉴시스] 메리앤 페이스풀, 롤링스톤스 믹 재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60년대를 풍미한 영국 팝스타 겸 배우 메리앤 페이스풀이 별세했다. 향년 78. 대표곡 '애즈 티어스 고 바이(As Tears Go By)'로 기억되는 그녀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스톤스' 음악에 영감을 준 뮤즈로도 유명하다.
1월31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풀은 30일(현지시간) 고향인 영국 런던에서 별세했다. 유족은 "고인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페이스풀은 1964년 롤링스톤스 프런트맨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작곡한 '애즈 티어스 고 바이'를 부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재거와는 내밀하면서도 괴로운 관계를 이어갔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떠나 1966년부터 재거와 사귀기 시작했고 그와 동거했다.
이들은 1960년대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신나는 런던)(1960년대 젊은이들 주도로 낙관주의·쾌락주의가 넘치며 역동적이었던 런던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의 화려하고 악명 높은 커플이었다.
[베를린=AP/뉴시스] 메리앤 페이스풀
특히 페이스풀은 1967년 롤링스톤스 멤버들과 마약 스캔들로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다. 이 사건으로 재거와 리처드는 잠시 감옥에 갇혔고, 페이스풀은 타블로이드 신문에 "스톤스 파티에서 벌거벗은 여자"로 소개됐다. 페이스풀은 이 별명에 대해 수치스럽고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다.
라이더 슈트를 입은 여성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 받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의 '모터사이클을 탄 소녀'(1968·국내 개봉 제목은 '그대 품에 다시 한번')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나섰다.
1970년 재거와 헤어진 뒤 그와 사귄 여파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져 20대 중반엔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6년 앨범 '드리밍 마이 드림스(Dreamin' My Dreams)'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1979년엔 역작으로 평가받는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매했다. 격정적인 '와이드 야 두 잇(Why'd Ya Do It)'과 "죄책감을 느껴요"라고 외치는 '길트(Guilt)' 등이 실린 음반이다. 고인의 마지막 앨범은 2021년 내놓은 '쉬 웍스 인 뷰티(She Walks in Beauty)'다.
[런던=AP/뉴시스] 롤링스톤스 믹 재거, 메리앤 페이스풀.
페이스풀은 세 번 결혼했다. 매혹적인 그녀는 그 가운데도 계속 열애설이 났다. 재거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인이었지만, 수많은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리처드와도 스캔들이 있었고 영국 글램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미국 싱어송라이터 진 피트니(Gene Pitney)와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포크록 대부 밥 딜런은 그녀에 대한 노래를 쓸 정도로 사랑에 빠졌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페이스풀은 그의 사랑을 거절했다.
무엇보다 페이스풀은 '쉬 스마일드 스위틀리(She Smiled Sweetly)', '렛츠 스펜드 더 나이트 투게더(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등 롤링스톤스의 수많은 노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롤링스톤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심퍼시 포 더 데블(Sympathy for the Devil)'의 기초가 된 러시아 소설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The Master and Margarita)를 재거에게 빌려준 이도 페이스풀이었다.
재거는 고인의 부고 소식 이후 소셜 미디어에 "메리앤 페이스풀의 죽음을 듣고 너무 슬프다. 그녀는 오랫동안 제 삶의 일부였다. 그녀는 훌륭한 친구이자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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