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19세부터 30대까지 20년 넘는 서사 표현
치열히 부딪히는 캐릭터 앙상블…이국적 풍광 매력도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변화무쌍한 콜롬비아의 날씨만큼 쉴 틈 없이 휘몰아친 107분. 순수로 시작해 욕망으로 치닫는 송중기의 무한 스펙트럼, 치열히 얽히고설킨 앙상블로 완성한 지구 반대편 생존 연대기. 추운 겨울을 뜨겁게 녹일 용광로같은 범죄 드라마.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감독 김성제, 이하 ‘보고타’)이다.
‘보고타’는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 분)가 보고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분), 박병장(권해효 분)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보고타’는 하나의 사건이나 소재가 갈등의 씨앗이 돼 갈등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범죄드라마들과는 달리 ‘연대기’란 신선한 전개 방식을 취해 눈길을 끈다. 영화는 낯선 땅의 ‘한인회’란 폐쇄적이고 작은 집단을 지배하고 있던 위계질서가 세월의 흐름,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서히 균열하고 붕괴하는 과정을 주인공 국희의 시선에서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국희의 시점에선 연대기이자 성장 드라마이면서, 국희를 둘러싼 한인회 사람들 간 갈등으로 시야를 넓히면 범죄 누아르의 색채를 띤 입체적 작품이다.
연대기 드라마는 보통 호흡이 길어 지루함을 줄 수 있지만, ‘보고타’는 상당히 속도감넘치는 흐름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선 핍진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들, 이들의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성과 앙상블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 국희를 비롯해 한인회의 실세 박병장, 수영, 작은 박사장(박지환 분) 등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생존을 목적으로 각자의 욕망에 솔직하며 이익에 따라 관계를 취하고 버리는 등 변화무쌍하다. 특히 국희의 존재와 능력은 각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엎치락뒤치락 반목하고 갈등하는 도화선이 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희의 뚝심, 처절한 생존 본능을 처음부터 눈여겨 본 박병장과, 그런 박병장과 협업하지만 서로 견제 관계인 수영이 국희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서서히 갈등의 골이 쌓인다. 초반에는 두 실세 박병장과 수영이 콜롬비아에서 살아남으려는 국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의지와 욕망, 눈치, 일머리로 그들 사이에서 생존의 방법을 터득한 국희가 점점 두 사람의 입지와 삶을 흔드는 존재가 된다.
영화는 그렇게 집단 내 위계질서와 권력이 박병장에서 수영으로, 수영에서 국희로 옮겨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역동적 과정을 국희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묘사한다. 이들의 갈등은 낯선 땅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나, 이들의 이해관계 변화와 갈등이 대한민국 역사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1997년(IMF), 2000년(밀레니엄 시대), 2002년(월드컵 4강신화), 2008년(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특정 시점들과 궤를 함께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스토리상 국희의 존재와 욕망이 인물 간 갈등 변화를 그리는 핵심적인 변수였던 만큼, 주인공 국희를 연기한 송중기의 열연이 ‘보고타’의 중심을 지탱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중기는 이번 작품을 통해 19세 소년이 30대 초중반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외적, 내적으로 그려냈다. 10대에서 20대, 20대에서 30대가 된 국희의 외모 및 스타일에 변화를 줌으로써 캐릭터의 입체성을 강화했다. 여기에 표정, 눈빛 등을 통해 한 소년이 순수성을 잃고 욕망과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 어른이 되는 씁쓸한 과정을 역동적 감정선으로 구현했다. 송중기의 필모그래피 통틀어 가장 욕망에 솔직하고 집요하며 생명력 질긴, 지나치게 속물적이라 판타지같기도 한 캐릭터다.
이희준을 비롯해 권해효, 조현철, 김종수, 박지환 등 노련한 배우들의 탄탄한 열연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각자 다른 관계성과 앙상블이 몰입감을 높인다.
낯설지만 아름답고, 광활해서 경외감을 자아내는 콜롬비아의 이국적 풍광과 총격전, 카체이싱 등 액션이 극적 생동감과 장르적 매력을 더했다.
한편 ‘보고타’는 오는 31일 개봉한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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