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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법정 선 노숙인에 책과 10만원 건넨 판사…그 책을 펼쳐봤습니다

온카뱅크관리자

2024-06-07 14:34:44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삐삐언니의 마음책방]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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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7215jzmb.jpg" data-org-width="660" dmcf-mid="8E1tkMEQ6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7215jzmb.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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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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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바람에 뺨이 얼얼하던 지난 겨울 스쳐가듯 읽었던 기사 하나가 몇달째 잊히지 않았습니다.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노숙인 ㄱ씨가 다른 노숙인 ㄴ씨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 끝에 흉기를 꺼내 위협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고 합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ㄱ씨가 초범이고 현장에서 흉기를 스스로 밟아 부러뜨린 점 등을 들어 실형을 면해줬습니다. 그러면서 날씨가 너무 추우니 일단 찜질방에서라도 지내라며 책에 10만원을 넣어 건넸습니다. 책은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인생’이었습니다. 엄동설한에 갈 곳 없는 ㄱ씨를 염려해 돈을 전한 마음은 알겠는데, 왜 책일까? ㄱ씨가 책을 읽으리라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왜 ‘인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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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8551wtls.jpg" data-org-width="500" dmcf-mid="6m7zIoCn4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8551wtls.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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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마음에 ‘인생’(백원담 옮김·푸른숲)을 펼쳤습니다. 황토진흙밭에 발이 훅 빠져드는 것처럼 금세 이야기에 빨려들어갔습니다. 민요를 채집하러 여름철을 농촌에서 보내고 있는 젊은이가 푸구이라는 늙은 농부를 만나 그의 인생을 서술한 액자소설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주름투성이 푸구이는 늙은 소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쟁기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황제는 나를 불러 사위 삼겠다지만/길이 멀어 안 가려네.”
 화자는 늙은 농부의 귀여운 허풍에 끌려 말을 섞었다가, 정확한 기억력과 뛰어난 묘사로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술술 풀어내는 푸구이에게 귀를 쫑긋 세웁니다. 네, 그의 인생 정말 기구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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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잣집에서 태어나 한량으로 살다 도박빚으로 가산 탕진
 
 가세가 기운 충격에 아버지 사망
 
 소작농 생활 시작
 
 국민당 군대 끌려갔다가 인민해방군 도움으로 귀향
 
 어머니 사망
 
 딸 ‘펑샤’ 열병으로 청력 상실
 
 아내 ‘자전’ 구루병에 걸림
 
 대약진 운동으로 기아 상태에 이름
 
 아들 유칭, 헌혈 중 의료사고로 사망
 
 문화대혁명 시기 친구 ‘충성’ 자살
 
 딸 펑샤, 결혼
 
 펑샤, 출산 중 사망/손자 ‘쿠건’ 출생
 
 아내 사망
 
 사위 사망
 
 손자 사망
 
 
 </blockquote>
 주인공 빼곤 등장인물이 죄다 죽어버리는 절대 비극의 세계입니다. 이들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도 처절합니다. “두 다리가 새발톱처럼 힘이 있어” 큰일 볼 때 한번도 주저앉은 적이 없다는 점을 자부했던 아버지는 전 재산이 날아가자 그만 똥통에 미끌어져 돌아가십니다. 평생 고생 몰랐던 어머니도 곧 큰 병을 얻어 아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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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9887oqga.jpg" data-org-width="791" dmcf-mid="PfKEVtf5Qd"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29887oqga.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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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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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유칭이 가장 비참합니다. 지방 고위 관리 아내를 위해 수혈을 해주다가 의사가 너무 피를 많이 뽑아버리는 바람에 쇼크사합니다. 딸 펑샤 인생 또한 눈물 납니다. 어릴적 열병으로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착하고 영리했던 펑샤는 마음씨 고운 남자 ‘얼시’를 만나 달콤한 행복을 누리는 듯하는데…첫아들을 낳다 눈을 감습니다. 지병으로 고통받던 아내는 석달 뛰 딸의 뒤를 따르고요. 기막힌 죽음은 계속 이어집니다. 아들처럼 살뜰했던 사위 얼시는 일터에서 시멘트판에 끼어 압사하고야 맙니다. 그래도 꼬맹이 쿠건에게 마음을 붙이며 푸구이에게 한가닥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는데… 웬걸요, 여섯살 쿠건은 굶주림에 콩을 마구 집어먹다가 숨을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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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31615mbwm.jpg" data-org-width="914" dmcf-mid="Q3c3DewM6e"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31615mbwm.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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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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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건은 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은 거라네. 그 아이가 게걸스러워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리 된 거지. 쿠건은 콩도 양껏 먹을 수 없었다네. 내가 정신이 나갔던 게지. 그렇게 많은 콩을 삶아주다니.”
 푸구이의 자책은 노을빛 들판에 조용히 번져갑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존재는 늙은 소 ‘푸구이’입니다. 쿠건이 죽고 난 뒤 푸구이는 손자가 오매불망 그렸던 소를 사러 시장에 갑니다. 푸구이라고 힘 좋고 팔팔한 젊은 소를 원하지 않았겠냐만, 도살 직전 눈물 뚝뚝 흘리는 늙은 소를 발견하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함께 집에 돌아옵니다. “소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와서는 녀석이 길어야 2~3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 했다네. 나는 오히려 내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일세.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이틀 전쯤에는 누군가 이런 말까지 했다네. ‘두 늙은이가 다 죽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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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32862rpvt.jpg" data-org-width="409" dmcf-mid="xmtJ0Sph4R"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7/hani/20240607133032862rpvt.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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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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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중국어 원제는 ‘활착’입니다. 살 활(活), 붙을 착(着).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위화는 활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활착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이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디는 데서 나온다.”
 그렇다면 판사가 노숙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아무리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견디라는 뜻이었을까요? 푸구이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시대의 무자비함에서 비롯됐든 또는 타인의 과실에서 기인한 것이든, 끝까지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위화는 미국의 민요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같은 내용의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가 폐지된 데는 당신의 공이 크다’며 이 책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를 치하했다고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잃어버리고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톰은 관대함과 성실함, 현명함을 갖춘 인물로 피부가 검지 않았다면 당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비범한 인간입니다.
 푸구이는 톰과 다릅니다. 노름과 주색에 빠져 스스로 인생을 망쳤고 꼬마인 아들에게 주먹질을 하고 어린 딸을 식모로 내주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굴곡진 중국 현대사에 납작하게 깔려 있는 수동적 인물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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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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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가 ‘인생’을 선물한 이유가 그저 어렴풋하게만 짐작이 갈 뿐이어서 직접 연락을 취해봤습니다. 알고 보니 그 판사는 법 제도의 테두리 안팎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justice)를 새롭게 정의하는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 ‘괄호 치고’를 쓴 분이었습니다. 노숙인에게 왜 책을 줬는지, 왜 ‘인생’이었는지, ‘인생’을 읽고 그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랐는지 물었습니다.
 친절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박주영 판사가 선고 전 파악해 본 바로는, ㄱ씨는 국가를 포함한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정부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공원 굴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27년째 살고 있었습니다. 지인과 술 한잔 하거나 시간이 남으면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 게 낙이고 소설가를 꿈꿨던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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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인생’을 각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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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 판사는 일단 급한대로 10만원을 주면서 “돈만 봉투에 넣으면 좀 이상할 것 같아” 선고 전날 서가에서 ‘인생’을 꺼냈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유화의 ‘인생’을 꼽은 적 있었습니다(‘어떤 양형 이유’ 중) 푸구이의 아들 유칭이 죽는 장면에선 “위화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꺼이꺼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이고, 인생의 온갖 역정과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낙관이 담긴 책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생’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ㄱ 씨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박주영 판사는 보호관찰관소에 연락해 ㄱ 씨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제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노숙중이라고 하시네요. 그렇지만 예전처럼 고물상 일을 계속하면서 특별한 일 없이 보호관찰을 잘 받고 계시다고 합니다. 한번의 재판으로 27년의 세월을 넘어주기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무탈하게 사시면 됐습니다. 다행이에요. 사실 푸구이 노인도 대단한 인생 반전은 없었지만, 늙은 소와 진흙밭에서 구르면서 잘 웃고 수다도 잘 떨고 하셨으니. ‘활착’이 꼭 지붕 있는 곳에서 사는 걸 뜻하는 건 아니겠지요.“
 오늘, 글이 좀 길었지만, 박주영 판사의 이 말은 옮기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사실 조언을 하면서도 주저했던 부분입니다. 다만 생애 첫 기소와 구속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으며, 이제라도 자신의 삶과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존재에 대해 한 번 돌아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 테니 저도 안심이 됩니다. 이분은 집과 주민등록만 없다 뿐이지,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건전하게 사는 분이시니까요. 위화 작가가 말했듯,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형태와 모양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노숙인의 삶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 역시 우리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말이 길었네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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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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