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도원 객원기자]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이상적 공존 모습을 안동이 보여주고 있다.
2025년, ITF(국제테니스연맹)의 공식 주니어 대회 일정표에 안동의 도시명 옆에는 작은 ‘녹색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ITF가 전 세계 수백 개의 주니어 대회 중 ‘우수 대회’로 인정한 대회에만 부여하는 특별한 상징이다.
이 별은 단지 대회가 매끄럽게 운영된다는 의미를 넘어, ‘선수 중심’, ‘모범적인 지역 협력’, ‘문화적 품격’까지 모두 갖춘 대회에만 주어진다. 선수 설문조사에서의 높은 만족도, 감독관의 긍정적 평가, 운영 매뉴얼의 완벽한 이행이 기본 조건이지만, 진정한 심사 기준은 “어디에서든 다시 뛰고 싶은 대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선수들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안동’이었을까.
2025년 봄, 경북 안동에서 열린 ITF J30 안동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는 경기력만큼이나 ‘공간을 함께 나누는 방식’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회 기간 내내, 안동의 테니스 동호인들은 자신의 코트 사용 시간을 기꺼이 조정하며 주니어 선수들에게 훈련 공간을 내주었다.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연습 중인 선수가 들어오면 먼저 라켓을 내려놓고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은 이곳에선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고, 규정도 없었다. 단지 “선수들이 잘하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응원과 배려가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었다. 이는 안동이라는 지역이 오랜 시간 쌓아온 테니스 문화,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전국적으로 보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풍경이다. 많은 지역에서는 엘리트 대회 유치 시 테니스장 사용 문제로 동호인들과 충돌하면서 갈등이 생기곤 한다.
그러나 안동은 달랐다. 오히려 지역 동호인들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양보하며, 선수들의 경기를 조용히 지켜보고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같은 풍경은 대회 전반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선수들은 “이곳에서는 마음 편히 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력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고, 이는 성적과도 직결되었다. 지역의 따뜻한 배려는 단지 대회 장소를 빌려주는 차원을 넘어, 선수 한 명 한 명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ITF의 녹색 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에게 주어지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국 곳곳에서 엘리트 대회와 생활체육 간의 균형을 고민할 때, 안동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배려와 존중, 자발적 협력으로 만들어낸 안동의 테니스 문화는 한국 테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안동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그 중심에는, ‘녹색 별’보다 더 빛나는 사람들의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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