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한국 경제성장률
英 분석기관, 올해 0.9%로
트럼프 관세·尹탄핵 장기화
글로벌IB도 성장률 줄하향
28일 코스피지수가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로 1.89% 하락한 2557.98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3개월여 만에 700선을 내줬다.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각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했다.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성장률 하방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영국 경제분석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지난 26일 경제전망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0%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달 1.1%에서 1.0%로 깎은 데 이어 이달 0.1%포인트를 추가로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제시한 것은 캐피털이코노믹스가 처음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70명가량의 경제학자가 근무하는 거시경제분석 회사다.
다른 글로벌 기관과 투자은행(IB)도 이달 들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끌어내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에서 1.5%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에서 1.2%로, 영국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1.8%에서 1.4%로 낮췄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하향했다.
성장률 전망치 줄하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투자심리가 움츠러든 것도 성장률에 부담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시장도 출렁였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89%(49.17포인트) 내린 2557.98에 마감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1원20전 오른 1466원5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車 관세 펀치'에 급락한 亞증시…韓은 '공매도 변수'까지 덮쳤다
트럼프 입김에 투심 얼어붙고 AI 반도체株 '버블론' 불안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28일 일제히 급락했다. 코스피지수는 2% 가까이 하락해 단숨에 2500대로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크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 인공지능(AI) 반도체주 ‘버블’에 대한 불안감, 오는 31일 재개하는 공매도, 배당락 등 네 가지 악재가 증시를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파랗게 질린 아시아 증시
코스피지수는 이날 1.89% 급락한 2557.98에 거래를 마쳤다. 2600선 위로 올라선 지 2주 만에 다시 2500대로 주저앉았다. 코스닥지수는 1.94% 하락한 693.76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월 2일(686.63) 후 약 3개월 만에 700선을 내줬다. 일본 닛케이225지수(-1.8%), 대만 자취안지수(-1.59%) 등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 투자자가 매물을 쏟아내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6421억원, 코스닥시장에서 1162억원,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 7881억원 등 현·선물 1조5464억원어치 를 내다팔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자, 관세가 미국 경기를 짓누를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며 위험자산 투자 심리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다음달 2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관세도 부과될 예정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신차의 45%를 수입하는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물가는 0.2~0.3%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며 “자동차 값이 올라 미국 자동차 판매량이 5%가량 줄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0.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미 수출국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에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멕시코와 일본, 한국 순이다. 지난해 기준 현대자동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170만 대) 중 미국 현지 생산비율은 38%에 불과하다. 전날 4% 넘게 떨어진 현대차는 이날도 3.53% 급락했다. 기아는 2.66% 내렸다. 일본 도요타는 4.53% 급락했다.
◇한국 증시는 ‘원투 펀치’ 맞아
반도체주도 크게 하락했다. 알리바바그룹이 인공지능(AI) 과잉투자에 우려를 밝힌 데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중단설, 중국 정부의 엔비디아 제품 규제 강화 소식까지 겹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했다. 삼성전자(-2.59%), SK하이닉스(-3.72%), 한미반도체(-4.26%) 등이 동반 하락했다.
오는 31일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거래대금이 급감한 것도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 이날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7조1360억원으로 한 달 전(15조6370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26일 기준 코스닥시장에서 대차잔액이 가장 많은 에코프로비엠(1조6740억원)은 이날 4.34% 급락했다.
금융주의 배당락도 악영향을 미쳤다. 유안타증권(-7.12%), 기업은행(-6.25%), DB금융투자(-5.71%), 미래에셋증권(-4.12%) 등이 일제히 급락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최근 주가 부진을 분할 매수 기회로 활용하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다음달 상호관세 부과 여부가 마무리되면서 ‘관세 불확실성’이 정점을 통과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기업 감세나 금융권 규제 완화 관련 내용이 시행되면 글로벌 증시는 반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선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탄 삼성전자, 미국에선 은행과 투자은행(IB), AI 소프트웨어주 등이 유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공매도 재개 후 헤지펀드 매수세가 들어오면 오히려 증시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심성미/류은혁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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