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반복돼 새집 찾는 세입자 불안 증가
특별법 개정 논의는 탄핵 정국에 막혀
"특별법 기한 늘리면서 근본 원인 풀어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새집을 찾는 임차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복된 전세사기 탓에 안전한 매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해온 특별법마저 일몰을 앞두고 있어 세입자의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부동산 매물 정보(사진=연합뉴스)
최근 대구에서 상경한 이모(24)씨는 17일 월세계약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지난 9일 이사한 서울 관악구 빌라의 임대인 정보가 계약 당시 이씨가 들은 내용과 달랐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는 ‘근저당이 8000만원 정도 남았지만 집주인이 갚을 여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계약을 권유했다. 하지만 계약 후 주민센터에서 발급한 서류에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갚아야 할 세입자가 10명 넘게 있었고, 기타주소가 확인되지 않는 임대도 있었다. 이씨는 “원래 전세를 원했지만 사기 위험이 커서 월세로 계약했는데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기가 남 일 같지 않다”며 “2년 뒤에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안에 떠는 것은 이씨뿐이 아니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성모(29)씨는 이사를 계획하면서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했다. 성씨는 “전세사기 뉴스가 계속 나오니까 나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괜찮은 집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공인중개사에 의한 사기도 있어서 믿기 어렵고 집주인의 경제사정이나 집 정보는 얻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부동산시장 내 공포는 지난해 전·월세 계약에서도 드러났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주택 임대 계약 중 월세 계약의 비중은 확정일자 정보가 취합되기 시작한 2014년(39.5%) 이후 가장 많은 57.7%를 차지했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전세 계약을 피하는 세입자들이 월세로 눈을 돌린 영향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세입자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전세사기 매물을 다시 시장에 내놓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동작구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강다영(28)씨는 피해 건물이 월세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강씨는 “포털 사이트에 사기 매물이 광고되고 있어서 신고했다”며 “피해자가 임차권 등기를 걸고 나간 사이에 빈집을 다시 월세 매물로 내놨는데 신고를 안했다면 누군가 또 피해를 볼 수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등기부등본을 조회한 결과 해당 건물에는 9억원 넘는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고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1월 가압류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작성된 월세 광고에는 이 같은 정보가 없었다. 하정희 서울보증보험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대표는 “2019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는 문제”라며 “범죄를 저질렀어도 경매에서 집이 낙찰될 때까지는 집주인의 소유인 점을 이용해서 끝까지 뽑아먹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해온 전세사기특별법마저 일몰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가 경·공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세사기특별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2023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2년 한시법으로 제정돼 오는 6월 일몰을 앞두고 있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법의 시행기간을 연장하는 개정안을 올해 발의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 속에서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특별법의 기간을 연장하면서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사기는 억울한 피해자가 많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여 있다”며 “특별법은 기한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말 피해를 줄이려면 문제가 주로 발생하는 빌라나 동네에 대한 정보 불균형이 해소되도록 행정관청이 나서고, 공인중개사의 정보 안내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민 (yml122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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